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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단 조상에 거적 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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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방활력연대 작성일 24-03-22 15:12 조회 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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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주변인으로 살고 있는 의병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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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일백 년 전 의병 적전지와 그 후손을 찾아가는 일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의병 가운데는 대부분 젊은 나이에 희생된 분이라 손이 끊어진 분이 많았다. 또, 남은 가족이나 후손들도 일제 35년 동안 '폭도의 가족'으로, 온갖 핍박 속에 살아온 탓에 여태 주변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해방 후에도 여전히 친일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주류로 행세하던 세상이었기에 이분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활개치기에는 가난과 배우지 못한 장벽이 매우 두터웠다.

 

애초 나의 계획보다 호남 의병전적지 답사는 기일이 두세 배 더 걸리고, 집필도 다른 어느 글보다 힘들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후손을 수소문해서 만나는 일이었다. 다행히 나를 도와주는 여러 분들이 후손들의 거주지를 샅샅이 알려 줘서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후손들이 만나기를 꺼려하는 경우에는 난감했다.

 

장성의 기삼연의 증손 기노웅씨도 그 가운데 한 분이었다. 내가 두 차례나 뵙기를 청했지만 당신은 할아버지에 대해 크게 아는 것도 없고, 별로 할 말도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래서 기삼연 의병장 부대의 선봉이었던 김태원 의병장 손자 김갑제씨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갑제씨도 같은 반응이라며 매우 난감해 했다. 후손이 굳이 사양하는데 빚 받으러 가는 사람처럼 막무가내로 갈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애초의 일정을 접어두고 다른 의병장 전적지 답사에 매달렸다.

 

곧 전라남도 답사를 마치고 전라북도로 지역을 옮기려고 하는데, 기삼연 의병장을 빠트려 두고 떠나기에는 선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기삼연 의병장은 호남창의회맹소 대장으로, 그 아래 김태원, 전해산, 이석용 등 호남 의병의 별 같은 부하를 둔 호남의병 맹주(盟主)였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호남의병장 영령들도 성재 기삼연 선생을 빠트린 채, 당신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나에게 한번 더 기노웅씨를 설득히라는 계시하는 것 같아 김갑제씨에게 다시 부탁했다.

 

기삼연 의병장 유적지를 찾아 나서다

 

김갑제씨는 기노웅씨에게 당신네 할아버지의 지난 인연을 말하면서 만나기를 간곡히 청하자, 그제야 마음의 문을 조금 열었다는 전갈이 왔다. 그 소식을 받은 나는 곧장 장성 유적지 답사를 위해 장성군에 도움을 청했다. 기삼연 의병장은 장성 태생인데, 기노웅씨는 순창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군에서는 장성문화원을 연결해 주었고, 문화원에서는 날짜에 맞춰 문화해설가를 대기 시켜 놓겠다고 했다.

 

그래 나는 2008년 3월 7일 이른 아침 강원도 원주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지난해 가을부터 광주행을 여러 차례 하다 보니 그새 길도 익어지고, 지름길도 알게 되어 한결 수월했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강원 산골에서 버스로 열차로 대여섯 번은 갈아탔는데 그 번거로움을 두어 번 줄었다.

 

12시 40분, 버스가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자 김갑제씨는 죽봉 김태원 의병장의 외손 신재선씨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신재선씨는 지난번 답사에 이어 이번에도 기사 역을 맡았다. 내가 "조상 잘못 둔 덕분으로 수고가 많다"고 하자 오히려 "남의 조상 일에 더 수고가 많다"고 덕담을 했다.

 

버스터미널과 같이 붙은 백화점 구내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장성으로 달렸다. 신재선씨가 장성 태생으로 길을 잘 안다는 게 화근이었다. 새로 지은 장성문화센터에서 장성문화원을 찾았으나, 문화원은 그곳으로 이주하지 않은 게 아닌가. 다시 길을 물어 장성문화원에 이르자 약속 시간보다 20여 분 늦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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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문화원에는 김영풍 문화원장, 이상용 유도회장, 장성향교 기우천 전교(典校), 행주기씨 문중 총무 기문백씨가 우리 일행을 반겨 맞았다.

 

김 문화원장은 마침 기우천 장성향교 전교가 행주기씨 문중 회장으로 누구보다 기삼연 의병장을 잘 아는 분이기에 다른 문화해설가를 제치고 모셨다고 소개했다. 기우천 전교는 나에게 멀리서 온 진객이라고 몹시 반기면서 환대했다.

 

명실상부한 일제 찌꺼기 청산

 

기우천 전교는 "비단 할아버지에 거적 자손이라, 자손들이 못 나서 보여드릴 게 별로 없다"고 하시면서 기삼연 의병장 유적지 안내에 앞장 섰다. 안내 틈틈이 "성재(省齋, 기삼연) 할아버지는 호남창의(湖南倡義)의 영수(領袖)로, 으뜸 의병장이신데 후손들이 변변치 못해 현창 사업을 하지 못하였다"는 말씀을 한스럽게 여러 번 하셨다.

 

먼저 우리 일행은 장성공원에 세워진 '호남창의영수기삼연선생순국비(湖南倡義領袖奇參衍先生殉國碑)'로 갔다. 2005년 10월 1일, 나는 의병선양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 와 묵념을 드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어느 몰지각한 이가 뿌려 놓은 붉은 스프레이 자국으로 몹시 마음이 아팠는데 지금은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기 전교는 왜정 시대에는 이곳에 그놈들 신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씀했다. 유형물만 자리바꿈하면 일제 잔재가 청산되는가.

 

의병 후손이나 독립투사 후손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이민족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린 이나 그 후손들이 지난날의 민족반역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은인자중할 때라야만 명실상부한 일제 찌꺼기 청산이요,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는 게 아닐까.

 

우리 일행은 순국비에 깊이 묵념을 드린 뒤 기삼연 의병장이 태어난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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