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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과거는 흘러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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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방활력연대 작성일 24-05-02 12:00 조회 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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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과거는 흘러갔건만…
2024년 05월 02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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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말이 있다.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한 농부가 밭을 가는데 토끼 한 마리가 달리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는 그때부터 일손을 놓고 토끼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토끼는 다시 오지 않았다는 것인데 ‘한비자(韓非子)’ ‘오두(五두)’편에 나온다.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제자백가 중의 법가(法家)가 유가(儒家)를 비판하는 정치 풍자였다. ‘한비자’는 중국 전국(戰國)시대 한(韓)나라의 공자(公子) 한비(韓非:서기전 281~서기전 233)와 그 제자들이 편찬한 정치철학서인데, ‘오두’편은 한비가 직접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진시황이 유학서를 불태우고 유학자를 묻어 죽인 분서갱유(焚書坑儒)와도 관련이 있다. 진시황이 사상 최초로 중원을 통일한지 8년째 되는 서기전 213년, 조회 석상에서 유가(儒家)인 박사 순우월(淳于越)이 고대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를 본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法家)인 승상 이사(李斯)는 ‘3대를 본받을 것이 없다’고 반대했다. 이사는 “지금 여러 유생들은 지금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옛 것을 가지고 지금의 세상을 비난하면서 백성을 현혹해서 어지럽히고 있습니다”고 비판했다. 유가들이 과거가 좋았다는 명목으로 현재의 정치를 비판한다는 비난이었다.

이사는 진(秦)나라 기록이 아닌 것은 모두 불태우고, 시(詩:시경)와 서(書:서경) 같은 유학서들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사는 서로 마주하고 시와 서를 말하는 자는 저잣거리에서 목을 베는 기시(棄市)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건의를 받아 의약(醫藥), 점복(占卜), 농업(農業)에 관한 책만 민간이 갖고 있을 수 있게 하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리는 분서를 단행했다.

이듬해에는 진의 수도인 함양(咸陽) 유생들이 요상한 말로 백성들을 어지럽힌다는 고발이 들어오자 진시황은 어사를 시켜서 심문하게 했다. 서로 고발하면서 형을 면제 받으려는 유생이 460여 명이었는데, 진시황은 구덩이를 파서 묻어 죽이고 천하에 이를 알렸다. 진시황은 기나긴 전쟁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만든 자신의 치세가 가장 살기 좋은 때인데도 유생들은 이미 지나간 삼대를 빗대 현재를 비난한다는 것이었다.

토끼가 와서 그루터기에 부딪쳐 죽는 것은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인데도 유학자들은 지난 세월이 다시 오기를 꿈꾼다는 비웃음이 낳은 고사성어가 수주대토다. 수주대토로 유가를 비판하고 법가를 옹호한 한비자가 같은 법가인 이사(李斯)의 계략에 몰려 옥중에서 자결한 것은 권력의 비정함과 무성함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얼마 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건국전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 일각이 심각한 중병에 들었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했다. 일제 통치 때가 좋았다는 뉴라이트 출신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추앙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승만은 과연 독립운동가였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에서 CIA 출신 인사가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협상을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도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의 나치찬양 처벌법이 절로 생각났다. 현 정권이 국민적 심판을 받은 핵심 이유도 일제 때가 좋았다는 뉴라이트 세력들을 정권의 이념가로 삼아서 홍범도 장군을 내모는 것으로 항일 독립전쟁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친일세력을 다시 우리 사회의 주류로 만든 이후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지배해왔지만 역사적 정통성만은 백범 김구로 대표되는 항일세력에게 있다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소박한 역사인식이었다. 친일·독재·부정부패·무능으로 점철되었던 이승만 집권기를 호시절로 호도하려는 정치·경제·사회 세력들이 다시 준동하는 이 현실은 한 역사학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역사에게 묻게 한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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