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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일어버린 역사 마한을 깨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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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방활력연대 작성일 21-02-02 12:39 조회 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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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야외에 재현해 놓은 옹관 가마. 연구소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대형옹관제작기술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고대옹관 제작기술을 밝혀냈다.

마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가 대형화된 옹관이다. 옹은 옛날부터 생활용으로 사용되다가 어린 아이가 죽으면 관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성인의 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형 옹관을 별도로 제작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대형옹관을 복원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대형옹관제작 고대기술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오량동 옹관가마터 발굴조사를 실시하면서 연구소 뒤편에 동일한 비율로 가마를 재현해 옹관을 제작하며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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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반남면 덕산리 고분군.

자미산성과 반남고분군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는 사적 제513호인 반남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영산강에 인접한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고분까지 40기의 고분이 반남 고분군에 포함된다. 반남 고분군은 4~5세기 마한 토착세력이 남긴 유적으로 알려지는데,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던 시기와 맞물려 조성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남 고분군의 특징은 대형옹관고분이라는 점이다. 대형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관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양식으로, 3~6세기 이 일대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했으며 분구의 규모도 훨씬 대형화 돼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고분은 피라미드형, 원추형, 사각형 등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대형옹관고분은 나주 반남 일대는 물론 영암, 함평, 무안 등 영산강을 따라 형성되고 있으며, 옹관고분의 밀집도로 봤을 때 반남 지역이 고대 지배세력의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남고분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은 인근 국립나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촌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금동신발, 은장삼엽문 환두도자, 옹관 등은 물론 마한시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도 많다. 아쉽게도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휴관 상태이기 때문에 미리 개관 여부를 확인 한 후 방문하는게 좋겠다.

 

반남고분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자미산성을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자미산성은 해발 98m의 그리 높지 않은 자미산에 위치한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사방이 탁 트여 주변부가 모두 보이는 건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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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암리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들.

영암 쌍무덤과 광주 신창동

 

 

영산강을 끼고 있는 영암에도 도기박물관이나 마한문화공원 쌍무덤 등 마한 흔적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조심스레 영암을 방문하려 했으나 갑작스럽게 이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는 소식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영산강과 가까운 시종면 일대에는 내동리 쌍무덤, 신연리 고분군, 장동 방대형 고분 등 마한시대 고분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지난해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시작한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에서는 마한시대 금동관 조각(앞장식)과 동물모양 토기 등이 출토됐다.

 

시종면 외에도 영암읍 옥야리, 학산면 금계리, 미암면 남산리, 덕진면 금산 고분군이 전남도 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옥야리 고분군은 28기에 달한다. 옥야리 무덤들은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후반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국가사적 375) 역시 초기 철기시대 마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거대한 농경복합유적이기도 하다. 1963년 옹관묘 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된 이후 수십개의 독널과 토기가마, 도랑, 주거지 등이 확인됐다. 유적에서는 칼 활 등 무기, 괭이 낫 등 농공구, 원통모양칠기를 비롯한 각종 용기, 현악기, , 신발골 등 다양한 목기와 칠기 유물이 출토됐다. 다만 마을 유적은 고분처럼 지표위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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